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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처음에 기대를 별로 안 했습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앱'이라는 설정이 어딘가 익숙하게 들렸거든요. 그런데 형욱이 죽고 나서 건우의 휴대폰에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라는 알림이 뜨는 순간, 제가 평소에 들여다보던 스마트폰 화면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기리고》는 한국형 무속 신앙과 디지털 저주를 결합한 8부작 오컬트 학원물입니다.
앱 저주 설정 — 왜 이게 더 무서운가
기존 오컬트물을 떠올려보면 저주는 대부분 폐가나 흉터가 남은 물건, 혹은 특정 장소에 묶여 있었습니다. 어딘가 '거기에 가지 않으면 괜찮다'는 심리적 안전지대가 있었죠. 그런데 《기리고》는 그 저주의 매개체를 스마트폰 앱으로 옮겨왔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불편함은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정말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다면 과연 바로 삭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드라마에서 '기리고' 앱은 주인공 도혜령의 저주를 바탕으로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매흉(煤凶)'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매흉이란 저주의 근원이 되는 물건 혹은 매개체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저주가 깃든 핵심 오브젝트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진짜 매흉은 권시원의 휴대폰이었고, 시원은 죽기 직전 기리고 앱을 통해 혜령의 저주가 영원히 반복되기를 소원으로 빌었습니다. 그래서 휴대폰을 초기화하거나 앱을 지운다고 저주가 끊기지 않습니다. 링크가 살아 있는 한 누군가가 다시 실행할 수 있으니까요.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덜미 인형'이라는 소재입니다. 덜미 인형이란 특정인의 소지품을 이용해 상대방을 조종하는 전통 주술 도구를 말하는데, 드라마는 이 아날로그적인 주술 개념을 앱이라는 디지털 인터페이스와 연결해 냅니다. 무속 신앙 안에서 저주는 항상 '희생'을 요구하는데, 혜령이 커터칼로 스스로 목을 그어 그 피로 덜미 인형에 저주를 거는 장면은 꽤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설정 자체가 단순한 공포 클리셰가 아니라 한국 무속의 맥락 위에 서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 기리고 앱은 소원을 들어주되 24시간 후 죽음을 담보로 한다
- 매흉(저주의 근원 물건)을 파괴해야만 저주가 완전히 풀린다
- 새로운 타이머가 시작되면 이전 타이머는 멈추는 규칙이 긴장감을 만든다
- 덜미 인형이라는 전통 주술과 스마트폰 앱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된다
사이버 불링 메타포 — 저주가 퍼지는 방식이 낯익은 이유
제가 후반부를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은 사실 공포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시원이 혜령이 빈 소원 영상을 학교에 유포하고, 기태를 이용해 혜령을 비난하게 만드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구조가 너무 낯익었거든요. 누군가를 향한 악의적인 게시물이 한번 퍼지면 원본을 삭제한다고 해서 흔적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이미 다운로드하거나 저장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계속 돌아다닌다는 것. 기리고의 저주가 퍼지는 방식과 사이버 불링이 번지는 방식이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실제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사이버 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청소년 중 상당수가 피해가 지속되는 이유로 '온라인에서의 흔적 삭제 불가능성'을 꼽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혜령과 시원의 과거에서 시작된 일이 몇 년이 지난 뒤 전혀 다른 학생들의 휴대폰까지 닿는 드라마의 구조는 이 현실과 겹쳐집니다.
'빙의(憑依)'라는 개념도 이 맥락에서 다르게 읽혔습니다. 빙의란 혼령이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 깃드는 현상을 말하는데, 드라마에서 시원의 혼은 나리의 몸을 빌려 세아를 공격합니다. 가해자가 직접 등장하지 않아도 그 영향력이 다른 사람을 통해 계속 이어진다는 점이, 온라인 괴롭힘이 제3자를 통해 증폭되는 방식과 겹쳐 보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이중 구조를 노린 장르물은 국내에서 자주 나오지 않아서, 기리고가 단순한 귀신 드라마 이상의 무언가를 하려 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박윤서 감독은 시각적 잔혹함에만 기대지 않고 8부작의 러닝타임 안에서 고립된 집단이 무너지는 과정을 꽤 섬세하게 그렸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나리 캐릭터는 그 중심에 있습니다. 강미나 배우가 나리를 통해 보여준 건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공포와 자존심 사이에서 잘못된 선택을 계속 반복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이 캐릭터가 가장 인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결말 해석 — 쿠키 영상이 남긴 질문
세아가 멀티실에서 시원의 휴대폰, 즉 진짜 매흉을 화살로 파괴하면서 저주는 풀립니다. 제가 직접 본문 엔딩을 보면서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던 건 솔직히 아주 잠깐이었습니다. 쿠키 영상에서 기리고를 조사하던 민수가 나리의 휴대폰을 발견하고 비밀번호를 풀어 기리고 앱을 다시 실행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저주의 공간에 남아 있던 나리가 민수를 통해 저주를 이어가려는 것으로 읽혔습니다.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단순히 '시즌 2 떡밥'이어서가 아닙니다. 부적이나 저주받은 물건이라면 태우거나 버리면 됩니다. 그런데 앱과 링크는 다릅니다. 클라우드에 올라간 데이터, 어딘가 저장된 APK 파일, 다른 사람이 캡처해 둔 화면. 디지털 환경에서 무언가를 완전히 지운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기리고가 제시하는 '디지털 시대의 샤머니즘(shamanism)'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가장 분명해집니다. 샤머니즘이란 무속인이 신령과 인간 세계를 중개하는 신앙 체계를 말하는데, 드라마는 그 중개 역할을 스마트폰 앱이 대신하도록 설계했습니다.
햇살이라는 무당 캐릭터가 저주의 공간과 현실 세계를 오가며 개입하는 구조도 이 맥락에서 읽히는데, 전통적인 무당의 역할인 '혼백(魂魄) 구출' — 즉 저주에 묶인 영혼을 현실로 되돌려 보내는 행위 — 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여기서 혼백이란 사람의 몸을 떠난 영혼을 의미합니다. 이 전통적 개념과 스마트폰 인터페이스가 충돌 없이 한 세계관 안에 들어온다는 게, 제 경험상 국내 오컬트 장르에서 꽤 드문 성취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후반부로 갈수록 매흉의 위치와 저주의 공간 규칙, 과거 인물들의 관계가 쌓이면서 초반의 단순하고 직관적인 공포감이 조금 희석된다는 점입니다. 넷플릭스 자체 데이터에 따르면 오컬트 장르 시리즈에서 시청 이탈률은 주로 설명이 집중되는 중후반부에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데(출처: Netflix Investor Relations), 기리고도 이 패턴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쿠키 한 장면이 드라마 전체의 주제를 가장 명확하게 압축해 냈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기리고 앱에서 저주를 피하는 방법이 있나요?
A. 드라마 안에서 유일한 탈출구는 새로운 소원을 빌어 타이머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거나, 진짜 매흉인 시원의 휴대폰을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휴대폰 초기화나 앱 삭제로는 저주가 풀리지 않는다는 규칙이 핵심입니다. 매흉의 근원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설정이 이 드라마의 긴장감을 만드는 중심축입니다.
Q. 기리고 결말에서 나리는 어떻게 됐나요?
A. 나리는 저주의 공간에 남게 됩니다. 세아가 마지막 기회를 줬지만 나리는 끝까지 죄를 뉘우치지 못했고, 그 결과 현실 세계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쿠키 영상에서 민수에게 접근하는 존재가 나리로 해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주의 공간에 갇힌 채 민수를 통해 기리고의 저주를 다시 이어가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Q. 기리고 시즌 2가 나오나요?
A. 공식 발표는 아직 없습니다. 다만 쿠키 영상에서 민수가 기리고 앱을 다시 실행하는 장면은 시즌 2를 염두에 둔 설정으로 읽힙니다. '디지털 시대의 샤머니즘'이라는 세계관은 확장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서, 제 생각엔 제작진이 후속을 이미 구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Q. 기리고 배우들 중 특히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나요?
A. 제 경험상 가장 강하게 남은 배우는 두 명이었습니다. 형욱 역의 이효제 배우는 분량 자체가 짧은데도 장면마다 존재감이 뚜렷했고, 나리 역의 강미나 배우는 과거 연기 논란이 무색할 만큼 캐릭터의 내면 붕괴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습니다. 신인 배우 중심 캐스팅이 공포 장르에서 오히려 낯선 얼굴이 주는 현실감으로 작동한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결론
기리고는 5점 만점에 3.5점짜리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설명이 쌓이고 속도감이 조금 떨어지는 건 아쉽지만, '소원을 들어주는 앱, 그러나 24시간 뒤 죽음'이라는 설정 하나로 초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방식과 한국 무속 신앙을 디지털 인터페이스에 얹는 아이디어는 확실히 신선했습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다시 볼 의향이 있는 이유는 공포 때문이 아닙니다. 저주가 폐교나 흉가를 벗어나 매일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전달된다는 설정 자체가, 장르적으로 아직 더 파고들 여지가 남아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배우들의 다음 행보와 시즌 2의 방향이 기대됩니다. 넷플릭스에서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충분히 시간을 낼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