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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를 받으려면 상대가 내 사정을 먼저 알아야 할까요. 저는 이 드라마를 두 번 보고 나서야 그 질문의 답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나의 아저씨는 스물한 살 지안과 중년의 직장인 동훈이 서로의 무너진 시간을 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지안의 삶이 너무 안쓰러워서 거기에만 시선이 꽂혔는데, 다시 보니 동훈도 만만치 않게 자기 삶을 겨우 버티고 있었습니다.
도청이라는 설정이 왜 이렇게 잘 작동했나
지안이 동훈에게 처음 다가간 건 순수한 마음에서가 아니었습니다. 지안은 처음부터 동훈의 뒤를 캐고, 그 과정에서 도청 장치를 이용해 그의 일상을 엿듣습니다. 도청(surveillance)이란 상대의 동의 없이 사적인 대화나 행동을 감시·기록하는 행위로,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명백히 잘못된 행동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 잘못된 행위를 단순히 나쁜 것으로 처리하지 않고, 거기서 역설적인 감정을 끌어냅니다.
지안은 매일 동훈의 퇴근길을 듣고, 집에서 쇠어 나오는 한숨을 듣고, 아내와의 대화를 듣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 목소리가 돈 때문이 아니라 동훈이라는 사람 자체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제가 이 장면들을 다시 돌려보면서 든 생각은, 누군가를 안다는 건 결국 그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아는 것에 가깝다는 거였습니다.
동훈에게도 비슷한 과정이 있습니다. 그는 겉으로는 회사 다니고 가정도 있는, 딱히 불행해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유능했던 건축기사가 후배에게 밀려 만년 부장으로 살고 있고, 아내의 외도까지 알게 되면서 내면의 공허가 점점 커집니다. 공허감(emptiness)이란 삶의 의미나 연결감이 결여된 심리 상태를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인데, 동훈의 상태는 교과서적 정의보다 훨씬 무겁게 화면에서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동훈은 도청 기록과 통화 내용을 역추적해 회사 내 비리의 실체를 파악하게 됩니다. 지안이 도청으로 동훈의 고독을 먼저 알게 됐다면, 동훈은 그 반대의 방향에서 지안의 삶이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알게 됩니다. 일방적으로 알던 관계가 서로를 아는 관계로 바뀌는 순간, 두 사람 사이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저는 이 설정이 단순한 극적 장치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을 진짜 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조금 불편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요. 도청이라는 잘못된 행위가 역설적으로 가장 깊은 이해의 통로가 된다는 점에서, 이 설정은 지금도 제 머릿속에서 가장 오래 남는 부분입니다.
- 지안은 도청을 통해 동훈의 고독을 아무도 모르게 가장 먼저 알게 됩니다.
- 동훈은 통화·도청 기록을 역추적해 회사 내 비리와 지안의 과거를 동시에 파악합니다.
- 두 사람 모두 '몰래 아는 것'에서 출발해 '서로 아는 것'으로 관계가 전환됩니다.
동훈과 지안, 이 관계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이 드라마를 두고 "결국 로맨스 아니냐"는 시각도 있고, "그냥 연민과 유대감이다"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는 두 입장이 다 맞기도 하고 다 틀리기도 하다고 느꼈습니다. 지안이 동훈에게 가진 감정에는 사랑과 구분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그게 전부라고 하기엔 그 안에 고마움과 존경,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을 한 사람으로 봐준 것에 대한 안도가 섞여 있습니다.
정서적 유대(emotional bond)란 공통된 경험이나 상호 이해를 통해 형성되는 심리적 연결을 뜻합니다. 지안과 동훈은 연인 사이가 되지 않지만, 그 어떤 연인 관계보다 깊은 정서적 유대를 보여줍니다. 제가 다시 보면서 특히 눈에 들어온 건 동훈이 지안의 살인 사실을 알게 된 이후의 태도였습니다. 그 일이 정당방위였다는 걸 확인하기 전에도, 동훈은 지안을 피하거나 충격을 먼저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냥 그 사람 자체를 봅니다. 그 장면이 솔직히 제 예상 밖이었습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이 모두 어느 정도 무너진 삶을 살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정신건강의학 분야에서는 삶의 의미 상실이 번아웃(burnout)과 연결된다고 보는데, 여기서 번아웃이란 장기적인 스트레스와 역할 박탈이 누적되어 감정적·신체적으로 소진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동훈처럼 겉으로는 기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에서 이미 소진된 상태가 얼마나 흔한지를 이 드라마가 꽤 정확하게 잡아냈다고 봅니다. 출처: WHO, 번아웃 국제 분류 기준(ICD-11)
지안과 동훈 사이에 생기는 관계 변화는 어느 한쪽이 상대를 구해주는 구도가 아닙니다. 지안이 동훈에게 관리 이사 자리를 제안하고, 동훈은 지안의 재판 위기 앞에서 그녀를 지지합니다. 서로의 존재가 각자의 삶에서 버티는 이유가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이게 사랑이냐 연민이냐를 굳이 분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게 이 드라마가 다른 멜로드라마와 다른 지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의 아저씨가 많은 사람에게 인생 드라마로 남는 이유를 저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이 드라마는 사람을 너무 쉽게 나누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사랑과 연민을 칼같이 나누지 않습니다. 실제 삶이 그런 것처럼요. 드라마 속 심리적 사실주의(psychological realism)가 이 드라마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심리적 사실주의란 인물의 내면과 행동이 현실 인간 심리에 가깝게 묘사되는 서사 방식을 뜻합니다. 출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한국 드라마 해외 수용 연구
자주 묻는 질문
Q.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과 동훈은 결국 사랑하는 사이인가요?
A. 드라마가 끝까지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는다는 게 이 드라마의 의도처럼 보입니다. 지안의 감정 안에는 사랑과 구분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지만, 고마움과 존경, 처음으로 사람답게 대우받은 것에 대한 안도도 함께 섞여 있습니다. 로맨스로 단정 짓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 오래 남는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Q. 나의 아저씨 도청 설정이 불편하지 않나요?
A. 저도 처음엔 불편했습니다. 도청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고 드라마 안에서도 그 사실이 부정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설정이 역설적으로 두 사람이 서로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는 가장 직접적인 통로가 됩니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설정을 유지한 것이 결과적으로 드라마를 더 깊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Q. 나의 아저씨는 우울한 드라마인가요? 보기 힘들지 않나요?
A. 보고 나서 기분이 가벼워지는 드라마는 아닙니다.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무겁고, 해결도 극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위로는 됩니다. 내 사정을 알고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버틸 수 있다는 메시지가, 힘든 시기에 보면 특히 크게 와닿는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Q. 나의 아저씨에서 곽일은 왜 지안을 괴롭히나요?
A. 곽일은 어릴 적 아버지의 죽음이 자신과 할머니를 괴롭혔던 것에서 비롯됐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 죄책감이 지안을 향한 공격성으로 표출되는 방식은 처음엔 납득이 안 됐는데, 다시 보니 자기 처벌의 변형된 형태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그 나름의 무게를 가진 인물이라는 시각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결론
나의 아저씨에는 인생을 확 바꿔주는 장면이 없습니다. 위기가 해결되는 방식도 조용하고, 관계가 정리되는 방식도 깔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다시 볼 때마다 처음과 다른 장면이 마음에 들어옵니다. 제가 처음엔 지안만 보였다가 두 번째에 동훈이 보이기 시작한 것처럼, 그 시점의 제 상태가 어떤 인물에게 시선을 보내는지를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한 명, 내 사정을 알고도 내 편에 있어주는 사람 한 명. 예전엔 그냥 좋은 대사 정도로 흘려들었던 말들이, 시간이 지나 다시 보니 왜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됐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지금 자신의 삶이 어떤 상태인지를 먼저 확인하고 보시는 걸 권합니다. 아마 그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드라마로 보일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