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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노인의 외형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는 남자의 일생을 따라가는 2008년작 영화입니다. 러닝타임이 무려 166분에 달하는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설정의 기이함보다 오히려 영화가 끝난 뒤 한동안 아무 말도 하기 싫었던 감각을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노인으로 태어나 아이로 죽는다 — 이 설정이 생긴 배경
이 영화의 원작은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가 1922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쓰인 작품으로, 전쟁으로 청춘을 잃어버린 젊은 세대를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에 가까웠습니다. 여기서 블랙 코미디란, 비극적이거나 불편한 현실을 유머나 역설로 비틀어 표현하는 문학적 장치를 말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원작과 방향이 꽤 다릅니다. 원작에서 벤자민은 부모에게 버림받지도 않았고, 데이지라는 인물 자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원작의 주인공이 노인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말도 할 수 있는 상태였던 것과 달리, 영화 속 벤자민은 갓난아기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세상에 나옵니다. 제가 직접 두 버전을 비교해 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원작의 풍자적 톤을 기대했다면 영화는 전혀 다른 감정선을 타고 있거든요.
영화를 연출한 인물은 《세븐》, 《파이트 클럽》, 《소셜 네트워크》를 만든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입니다. 핀처가 이런 서정적인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저에게는 꽤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이 감독 이름을 모르고 처음 봤다가, 엔딩 크레디트에서 그 이름을 확인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결이 다른 작품입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허리케인이 몰아치는 현재 시점에, 딸 캐롤라인이 임종을 앞둔 어머니 데이지의 부탁으로 벤자민의 일기를 소리 내어 읽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 서술 구조를 내레이션 프레임(narration frame)이라 부르는데, 쉽게 말해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담긴 액자식 구성입니다. 이 방식 덕분에 영화는 처음부터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묘한 거리감과 그리움을 동시에 만들어냅니다.
- 원작 발표: 1922년, F. 스콧 피츠제럴드 단편소설
- 영화감독: 데이빗 핀처 / 주연: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 러닝타임: 166분 / 2008년 개봉
- 원작과 영화의 결정적 차이: 데이지 캐릭터, 입양 설정, 정서적 톤
시간이 거꾸로 가도 삶의 구조는 같다 — 핵심 분석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저도 거꾸로 흐르는 시간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봤을 때는 완전히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벤자민의 인생을 정상적인 시간 순서로 뒤집어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사실 누구나 겪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걷는 법을 배우고, 세상 밖으로 나가고, 사랑하고, 전쟁을 경험하고, 친구를 잃고, 아이를 낳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이 순서의 방향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벤자민의 인생이 특별해 보이는 건 설정 때문만이 아닙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진짜로 무너졌던 장면은 데이지와 나이가 비슷해진 그 짧은 시기였습니다. 두 사람에게 너무 당연해야 할 시간이 오직 그 짧은 창에만 허락되었다는 사실이, 설정을 알고 있어도 예상보다 훨씬 아팠습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또 다른 축은 벤자민 주변을 지나간 사람들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그를 품어준 양어머니 퀴니, 삶과 죽음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해 준 요양원 사람들, 바깥세상을 알려준 마이크 선장, 사랑과 이별을 가르쳐 준 엘리자베스와 데이지. 이 인물들은 각자 벤자민에게 하나씩 무언가를 남기고 사라집니다.
여기서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라는 개념을 잠깐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캐릭터 아크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등장인물이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궤적을 말합니다. 벤자민의 아크는 노인의 몸에서 아이의 몸으로 가는 외형적 변화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받은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쌓아가는 내면의 성장에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는 단순히 설정이 독특한 영화가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 오래 남는 영화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영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이 작품은 비선형 서사(non-linear narrative) — 즉 시간의 흐름을 뒤섞거나 역전시켜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 — 의 대표적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출처: IMDb,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이 구조 덕분에 관객은 벤자민의 인생을 단순히 따라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기억과 겹쳐서 보게 됩니다.
이 영화를 두 번 봐야 하는 이유 — 실전 감상법
저는 이 영화를 꼭 두 번 보길 권합니다. 첫 번째는 거꾸로 흐르는 시간과 벤자민·데이지의 사랑에 집중해서 봐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를 볼 때는 시선을 조금 다르게 두는 편이 훨씬 풍성합니다. 벤자민 옆을 스쳐 지나간 인물들 — 번개를 일곱 번 맞은 요양원 노인, 피아노를 가르쳐 준 할머니, 마이크 선장 — 의 대사 한 줄 한 줄에 집중해 보시길 바랍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엔딩 크레디트 직전에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을 의도적으로 벤자민이 아닌 조연들의 목소리로 채웠습니다. "누군가는 강가에서 태어났고, 누군가는 예술가이며, 누군가는 그냥 엄마이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라는 식으로요. 주인공이 죽고 난 뒤에도 세상은 계속된다는 이 연출은, 일반적으로 영화가 주인공의 서사와 함께 닫히는 방식과는 다릅니다. 핀처가 여기서 말하고 싶었던 건 세계의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이었겠죠.
또 한 가지,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본 뒤 한동안 "내 곁에는 어떤 사람들이 지나갔는가"를 생각했습니다. 벤자민이 데이지에게 남긴 건 사랑이었지만, 퀴니에게 배운 건 무조건적인 수용이었고, 엘리자베스에게 배운 건 이별을 견디는 법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주제의식(thematic intention) — 즉 작품이 궁극적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 — 은 "배움 없는 삶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꽤 직접적인 선언에 가깝습니다.
영화 비평 분야에서도 이 작품의 주제의식은 꾸준히 언급됩니다. 로저 이버트(Roger Ebert)는 생전에 이 영화를 두고 "삶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동시에 붙잡으려 한 작품"이라고 평한 바 있습니다(출처: RogerEbert.com). 제 경험상도 이 말이 정확합니다. 166분 내내 무겁지 않지만 끝나고 나면 꽤 오래 자리에 앉아 있게 만드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벤자민 버튼 영화 원작 소설이랑 많이 다른가요?
A. 꽤 많이 다릅니다. 원작에는 데이지라는 인물 자체가 없고, 벤자민이 부모에게 버림받는 설정도 없습니다. 원작이 1차 세계대전 이후 세대를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라면, 영화는 한 인간의 서정적인 생애를 따라가는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같은 설정을 쓰지만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Q. 러닝타임 166분인데 지루하지 않나요?
A. 솔직히 중반부는 흐름이 느립니다. 한 사람의 일생 전체를 따라가는 구조라 사건이 빠르게 연결되기보다는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느린 호흡 자체가 "인생"이라는 주제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서, 두 번째로 볼 때는 오히려 그 템포가 잘 맞게 느껴졌습니다.
Q.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벤자민이 아니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A. 영화의 서술 구조를 보면 벤자민의 이야기를 읽어주는 사람은 딸 캐롤라인이고, 이야기를 부탁한 사람은 데이지입니다. 벤자민이 일기를 남긴 이유도 결국 딸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수신하고 완성하는 주체는 캐롤라인이라고 볼 수 있고, 그 의미에서 진짜 주인공이 캐롤라인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Q. 데이빗 핀처 감독의 다른 영화와 분위기가 많이 다른가요?
A. 네, 상당히 다릅니다. 《세븐》이나 《파이트 클럽》이 어둡고 긴장감 있는 스릴러라면, 이 작품은 훨씬 느리고 서정적입니다. 저도 감독 이름을 모르고 봤다가 엔딩 크레딧에서 핀처를 확인하고 꽤 놀랐을 정도입니다. 핀처의 다른 작품을 먼저 본 분이라면 오히려 이 차이 자체가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결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결국 아주 보편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당신 곁을 지나간 사람들은 당신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한동안 제 주변 사람들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벤자민처럼 거꾸로 살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배우며 살고 있다는 것을요.
처음 볼 때는 설정과 사랑에 집중하고, 두 번째를 볼 때는 조연들의 대사에 귀를 기울여 보시길 권합니다. 엔딩 직전, 핀처가 고른 마지막 문장들 옆에 스스로 한 줄을 덧붙여 본다면 이 영화가 왜 166분이어야 했는지 자연스럽게 납득이 될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엔 "누군가는 사랑을 한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