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출처: 상속자들

 

《상속자들》을 지금 다시 보면 로맨스보다 최영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오랜만에 다시 틀어놓고 30분도 안 돼서 "이 드라마, 캐스팅이 진짜 말이 안 됐었구나"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뜯어보면 설정도 대사도 다 과한데, 그래서 오히려 뭔가 계속 걸립니다.



최영도가 지금 다시 보면 더 복잡하게 읽히는 이유

일반적으로 《상속자들》 하면 김탄과 차은상의 멜로라인을 중심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이번에 다시 보고 나서는 오히려 최영도 캐릭터에 더 오래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최영도가 차은상을 처음 마주치는 장면부터가 그렇습니다. 그를 넘어뜨리고 "오늘부터 네 것"이라고 선언하는 장면, 지금 보면 솔직히 불편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불편함이 캐릭터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최영도는 차은상을 직접적으로 좋아한다고 말하는 법이 없고, 대신 괴롭히거나 주변을 맴돕니다. 감정 표현에 서툰 인물 유형, 그러니까 드라마 용어로 치면 이른바 '츤데레(tsundere)' 구조를 가진 캐릭터입니다. 여기서 츤데레란 겉으로는 차갑게 굴거나 적대적으로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상대에게 호감이 있는 인물 유형을 뜻하는데, 최영도는 그중에서도 감정을 끝까지 직접 꺼내놓지 않는 쪽에 가깝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캐릭터는 당시 드라마에서 꽤 흔한 패턴이었는데, 최영도가 달랐던 건 김우빈이라는 배우가 그 안에 실제로 뭔가를 채워 넣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차은상이 괴롭힘으로 힘들다고 토로하는 장면에서 최영도의 표정이나, 김탄과 신경전을 벌이면서도 은상의 위치를 계속 의식하는 눈빛 같은 것들이요. 대사가 아니라 태도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이 지금 봐도 꽤 인상적입니다.

결국 "김우빈 하면 아직도 최영도"라는 말이 10년 넘게 유효한 이유는, 캐릭터 자체가 가진 구조적 흡인력 때문이라고 봅니다. 잘 쓰인 서브 캐릭터(supporting character)는 메인 로맨스 라인보다 오래 기억된다는 걸 최영도가 증명하는 셈입니다. 여기서 서브 캐릭터란 주인공 이외의 인물로, 주인공의 이야기를 보조하면서도 독립적인 서사를 갖는 인물을 말합니다.

  • 최영도는 차은상에게 직접 감정을 고백하는 장면이 없음에도 존재감이 강력합니다.
  • 김우빈의 비언어적 연기가 대사 없이 캐릭터 감정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 서브 캐릭터임에도 메인 로맨스 라인과 대등한 기억력을 갖는 드문 사례에 해당합니다.
요약: 최영도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츤데레 구조와 김우빈의 비언어적 연기가 결합해 서브 캐릭터임에도 10년 넘게 회자되는 캐릭터가 됐습니다.

 

 

신분 설정과 캐스팅, 지금 보면 오히려 선명하다

일반적으로 《상속자들》의 신분 차이 설정은 "너무 작위적"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습니다. 가정부의 딸, 첩의 아들, 재벌 약혼녀, 사회적 배려자 전형 입학까지 한 드라마에 다 몰아넣은 건 맞습니다. 저도 다시 보면서 "이게 학원물이 맞긴 한 건가"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다 보면, 이 과한 설정이 실은 제국 고등학교라는 공간을 유지하는 골격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제국고는 겉으로는 모두가 '가진 것'으로 입장하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자기 약점을 감추고 있는 곳입니다. 차은상은 신분을, 김탄은 출생을, 최영도는 감정을 숨깁니다. 이 구조를 드라마 비평 용어로는 '계층적 은폐 서사'라고 부를 수 있는데, 쉽게 말해 인물들이 자기 정체성의 핵심 부분을 감추면서 집단 내에서 위치를 유지하려는 서사 패턴입니다. 이 패턴이 일관되게 작동하기 때문에, 설정이 과해도 이야기가 무너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재회 파티에서 차은상이 스스로 신분을 밝히는 장면은 제가 이번에 다시 봤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입니다. 숨기다가 들키는 것과, 먼저 꺼내놓는 것은 캐릭터의 위치를 완전히 바꿉니다. 그 장면부터 차은상이 조금 달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캐스팅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지금 와서 보면 이민호, 김우빈, 박신혜, 정수정, 강민혁이 한 드라마에 동시에 나왔다는 게 솔직히 믿기지 않는 수준입니다. 한국드라마진흥원(KOFICE)이 분석한 2013년 한류 트렌드 보고서에서도 《상속자들》은 해당 연도 최고 화제작 중 하나로 기록됐는데(출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그 배경에는 스토리보다 캐스팅 파워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제 경험상 당시 이 드라마를 처음 볼 때도 내용 반, 배우 반으로 끌렸던 게 맞습니다.

"어디에 있든 뒤를 돌아보면 내가 서 있을 거야"라는 김탄의 대사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18살이 할 말로는 상당히 거창합니다. 멜로드라마에서 이런 과장된 감정 선언을 '과잉 로맨티시즘(hyper-romanticism)'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과잉 로맨티시즘이란 현실에서는 발화되기 어려운 수준의 고밀도 감정 언어를 인물에게 부여하는 장치를 말합니다. 그게 불편하면서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 드라마의 인물들이 그 감정을 실제로 감당해 내는 장면들이 함께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드라마학회 등 학술 연구에서도 2010년대 초반 멜로드라마의 언어적 특성으로 이 과잉 감정 표현 방식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다뤘습니다(출처: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요약: 과한 신분 설정은 오히려 제국고 전체를 관통하는 '계층적 은폐 서사'의 뼈대였고, 캐스팅과 과잉 로맨티시즘 대사가 결합해 지금도 장면 단위로 선명하게 기억되는 드라마가 됐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상속자들 지금 다시 봐도 재밌나요?

A. 제가 직접 다시 봤는데, 로맨스 자체보다는 캐릭터 간 신경전과 대사가 여전히 건집니다. 다만 지금 기준으로는 일부 장면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2013년 드라마라는 맥락을 두고 보시는 편이 낫습니다.

 

Q. 최영도가 왜 그렇게 기억에 남는 캐릭터인 건가요?

A.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으면서 행동으로만 내보이는 구조가 인상 깊게 남는 원인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김우빈이 대사 없는 장면에서 표정과 눈빛으로 감정을 채워 넣는 연기를 더했기 때문에, 메인 캐릭터보다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서브 캐릭터가 된 것 같습니다.

 

Q. 차은상의 신분 고백 장면이 왜 중요한가요?

A. 드라마 전반에서 차은상은 가정부의 딸이라는 사실을 숨기다가 결국 들키는 구조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재회 파티에서 스스로 먼저 밝히는 장면은, 들키는 것과 꺼내놓는 것의 차이를 보여주는 순간입니다. 제 경험상 이 장면부터 차은상이라는 인물이 피해자 포지션에서 능동적 주체로 전환되는 느낌이었습니다.

 

Q. 상속자들 캐스팅이 왜 말이 안 된다고 하는 건가요?

A. 이민호, 김우빈, 박신혜, 크리스탈이 한 드라마에 동시에 출연한 구성이기 때문입니다. 각자 당시 이미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배우들이었는데, 이 멤버가 한 작품에 묶인 건 지금 시점에서 돌아봐도 꽤 이례적인 조합입니다.

 

 

결론

《상속자들》을 지금 다시 보면 완성도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설정은 촘촘하지 않고, 김탄이 차은상을 대하는 방식 중 일부는 지금 시선으로 보면 그냥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저도 이번에 다시 보면서 불편한 장면을 한두 번 멈추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캐릭터 하나하나에 저마다의 감출 것이 있었고 그걸 드러내거나 들키는 순간들이 제법 설득력 있게 쌓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특히 최영도, 그리고 신분 고백 이후의 차은상은 다시 봐도 장면 단위로 선명하게 남습니다. 지금 《상속자들》을 처음 보실 분이라면 멜로보다는 캐릭터 중심으로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그게 제가 이번에 얻은 결론입니다.

참고: https://youtu.be/LI4dEQQ-A5E?si=QtGexWRvJ7tE3LJ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