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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을 잘해야만 계속해도 될까요? 《쌈, 마이웨이》를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유쾌한 청춘 로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다시 틀어보니 전혀 다른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동만이 애라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장면보다, 애라가 면접장에서 스펙 때문에 잘려나가는 장면이 더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이 드라마가 단순한 연애물이 아닌 이유를 이제야 제대로 이해한 것 같습니다.
꿈과 현실 — 이 드라마가 불편하게 현실적인 이유
《쌈, 마이웨이》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꿈과 직업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뉴스 앵커를 꿈꾸던 애라는 백화점 인포 데스크에 앉아 있고, 태권도 국가대표를 목표로 했던 동만은 진드기 박멸사로 일합니다. 드라마는 이 괴리를 코믹하게 포장하지만, 솔직히 처음 봤을 때보다 지금 다시 보니 그 씁쓸함이 훨씬 세게 와닿았습니다.
특히 제가 주목한 건 애라가 면접에서 반복적으로 겪는 구조적 배제입니다. 여기서 구조적 배제란 실력이나 열정과 무관하게 학벌·인맥·혈연 같은 외부 요인으로 기회 자체가 차단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애라는 백화점 사내 방송 면접에서 학연·지연·혈연 때문에 탈락하고, 아나운서 공채에서는 나이와 스펙을 지적받습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이력서 한 장으로 보면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그 장면이 제 경험상 가장 현실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동만의 경우는 조금 결이 다릅니다. 그의 좌절에는 승부 조작 논란이라는 외부 요인이 있었습니다. 승부 조작이란 경기 결과를 사전에 의도적으로 결정하는 행위로, 동만은 동생 병원비 때문에 시합을 포기한 뒤 이 오명을 뒤집어쓰고 선수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 10년이 지나 복귀를 시도할 때 탁수가 여론을 조작하며 방해하는 장면도 같은 맥락입니다. 결국 동만도 애라도 '실력이 부족해서' 무너진 게 아니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방영 당시 《쌈, 마이웨이》는 청춘의 현실을 가장 솔직하게 담은 드라마 중 하나로 평가받았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가 다시 보면서 느낀 것도 정확히 그 지점이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청춘이니까 뭐든 된다'가 아니라 '안 되는 상황에서도 다시 해본다'는 이야기입니다.
- 애라 — 뉴스 앵커 꿈 → 인포 데스크 현실 → 학연·지연·혈연으로 반복 탈락 → 링 아나운서로 새 길 개척
- 동만 — 태권도 국대 꿈 → 진드기 박멸사 현실 → 승부 조작 오명·10년 공백 → 격투기 복귀·탁수 격파
- 설희 — 현모양처 꿈 → 상담원 현실 → 6년 연애 희생 끝에 이별 → 매실 사업 창업으로 자립
성장 — "잘해야 해도 된다"가 아니라 " 하고 싶어서 한다"
제가 처음 이 드라마를 봤을 때는 동만과 애라의 밀당이 제일 재밌었습니다. 친구에서 연인으로 넘어가는 그 애매한 타이밍, 질투하면서도 아닌 척하는 장면들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그 설렘보다 둘이 각자의 꿈 때문에 부딪히는 장면이 훨씬 더 깊게 읽혔습니다.
특히 동만의 서사에서 눈에 띈 건 데뷔 전 패배 이후의 태도였습니다. 브라질 주짓수 명문가 선수에게 졌을 때 동만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주짓수(Brazilian Jiu-Jitsu)란 상대를 제압하는 그래플링 기반의 격투 기술로, 그라운드 싸움에 특화된 종목입니다. 동만은 이 약점을 직접 배우러 나섭니다. 실패를 회피하지 않고 훈련 과정 자체에 편입시키는 방식이었습니다. 그게 제 경험상 이 드라마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장면이었습니다.
애라의 성장도 비슷한 결입니다. 아나운서 공채 면접에서 면접관에게 인신공격성 질문을 받았을 때, 애라는 "제 역량을 제가 결정하겠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결국 케이블 링 아나운서, 최초의 여성 케이지 아나운서라는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냅니다. 케이지 아나운서란 격투기 경기장 내부 옥타곤 링 위에서 선수를 소개하고 경기를 진행하는 역할을 의미합니다. 대형 방송국 합격이라는 '정해진 성공'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두 가지를 결합한 새 직군을 스스로 만든 셈입니다.
설희 이야기는 처음 볼 때 가장 오해받기 쉬운 서사입니다. 현모양처가 꿈이라는 말이 답답하게 들릴 수 있는데, 드라마는 그 꿈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기희생만 반복되는 관계가 그 꿈을 진짜로 이뤄주는지를 따져 묻습니다. 설희가 이별 후 처음으로 자기 돈을 자기에게 쓰고, 주짓수를 배우고, 매실 사업을 시작하는 과정은 꿈을 버린 게 아니라 꿈을 지키기 위해 자신부터 세우는 과정이었습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예상 밖으로 오래 멈춰 생각했습니다.
드라마 연구자 심미선은 2010년대 한국 청춘 드라마가 성공 서사에서 과정 서사로 이동했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출처: DBpia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 《쌈, 마이웨이》는 그 흐름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주인공들이 대단한 성공을 보장받아서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기가 그 일을 하고 싶어서 다시 한다는 것. 그게 이 드라마의 핵심이고, 지금 다시 봐도 힘이 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쌈 마이웨이 다시 보면 재밌나요?
A. 처음 볼 때와 다시 볼 때 완전히 다른 드라마처럼 느껴집니다. 처음엔 동만·애라의 로맨스 라인이 주로 눈에 들어오지만, 다시 보면 꿈과 현실의 괴리, 구조적 불합리함을 다루는 서사가 훨씬 선명하게 읽힙니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공감되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Q. 동만이 격투기 선수가 되는 과정이 현실적인가요?
A. 10년 공백 뒤 아마추어 데뷔 전에서 패배하고, 약점인 그래플링을 직접 보완하며 올라가는 과정은 꽤 현실적인 구성입니다. 드라마가 첫 경기부터 통쾌한 승리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이 서사의 신뢰도를 높여줍니다. 단, 최종 탁수와의 재대결 결말은 드라마적 카타르시스가 강하게 작용한 구상임을 감안해야 합니다.
Q. 설희와 주만 커플은 왜 이렇게 힘든 과정을 겪나요?
A. 설희·주만 라인은 6년 장기 연애에서 생기는 권태와 불균형한 희생 구조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주만이 예진에게 흔들리는 건 단순한 바람 서사가 아니라, 오랜 관계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의 일부로 읽힙니다. 설희가 이별 후 자립하는 과정이 이 라인의 진짜 결말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Q. 박혜란 캐릭터가 드라마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A. 박혜란은 애라가 꿈꾸던 아나운서의 자리에 실제로 오른 인물로, 애라에게 현실의 벽이자 경쟁 상대로 기능합니다. 동시에 재벌가 결혼 후 파경을 맞는 혜란의 서사는 '스펙 좋고 성공한 삶'이 반드시 행복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대비 구조로 작동합니다.
결론
《쌈, 마이웨이》를 다시 보고 나서 제목이 새삼 다르게 읽혔습니다. '마이웨이'란 내 방식대로, 내 속도대로 간다는 뜻인데,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정확히 그렇게 삽니다. 대단한 스펙도, 보장된 성공도 없이, 그냥 하고 싶어서 계속 달립니다.
제가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이겁니다. 예전엔 동만과 애라가 연인이 되는 순간이 클라이맥스였는데, 지금은 각자가 자기 꿈의 방향을 다시 잡는 순간들이 더 좋습니다. 잘 안 됐어도, 한 번 크게 넘어졌어도, 그래도 다시 해본다는 태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묵직하게 느껴집니다. 한 번 더 보고 싶다면 연애 라인보다 각 인물이 어떤 방식으로 다시 일어나는지를 따라가 보는 것을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