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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200년, 트로이 전쟁은 준비 기간까지 합쳐 무려 20년이 걸린 고대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습니다. 영화 《트로이》는 그 방대한 이야기를 단 몇 시간 안에 담아낸 작품인데, 다시 보고 나니 제가 처음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상이 남았습니다.
원작 《일리아스》와 영화의 차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영화 《트로이》는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Ilias)》를 기반으로 합니다. 여기서 《일리아스》란 트로이 전쟁 10년 중 마지막 해를 집중적으로 다룬 문학 작품으로, 역사서가 아니라 서사시, 즉 영웅들의 이야기를 운문으로 풀어낸 장편 시입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꽤 당황했습니다. 역사 기록인 줄 알고 봤거든요.
영화가 원작과 다른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가장 크게 눈에 띄는 건 신(神)의 존재를 완전히 걷어냈다는 점입니다. 원작 《일리아스》에서는 아테나, 아폴론, 아프로디테 같은 올림포스 신들이 전쟁에 직접 개입합니다. 예를 들어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에게 질 뻔한 순간, 아프로디테 신이 그를 구해주는 장면이 원작에는 등장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개입이 전혀 없고, 트로이의 멸망은 순전히 인간의 선택이 쌓인 결과로 그려집니다.
브리세이스(Briseis)의 설정도 완전히 다릅니다. 원작에서 브리세이스란 트로이가 아닌 다른 도시를 공격할 때 아킬레우스가 전리품처럼 데려온 유부녀로, 헥토르의 사촌도 아니고 신전을 지키는 사제도 아닙니다. 영화는 그녀를 트로이 왕족의 혈통이자 아폴론 신전의 사제로 설정해 이야기에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로 바꿨습니다. 제가 직접 원작 관련 자료를 찾아봤는데, 이 차이를 모르고 영화를 보면 원작을 오해할 가능성이 꽤 크더라고요.
아킬레우스(Achilles)의 참전 배경도 다릅니다. 원작에서는 어머니 테티스가 아들을 전쟁에 보내지 않으려 여장을 시켜 숨겼고, 오디세우스가 이를 꿰뚫어 보고 무기를 이용해 정체를 밝혀낸 뒤 참전을 이끌어냅니다. 반면 영화에서는 테티스가 오히려 아들에게 트로이에 가라고 부추기는 정반대의 설정으로 바뀝니다. 이처럼 영화는 《일리아스》의 전체적인 틀과 주요 사건은 가져오되, 인물들의 관계와 동기는 현대 전쟁영화의 문법에 맞게 대폭 재구성했습니다.
참고로 감독판은 3시간 16분짜리입니다. 만약 원작의 신화적 에피소드와 신들의 개입까지 모두 담으려 했다면 3부작으로도 모자랐을 거라는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영화 《트로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배경은 출처: 참고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일리아스》는 역사서가 아닌 서사시(운문 문학)로, 영화의 직접적인 원전이 됩니다
- 영화는 신들의 개입을 모두 제거하고, 트로이 전쟁을 인간의 선택으로만 진행시킵니다
- 브리세이스, 아킬레우스 참전 배경, 페트로클로스의 관계 등 주요 인물 설정이 원작과 크게 다릅니다
- 원작 전쟁은 준비 10년 + 전쟁 10년으로 총 20년이지만, 영화는 몇 달 안에 빠르게 진행됩니다
헥토르와 아킬레우스, 두 사람 중 누가 더 마음에 남습니까
솔직히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아킬레우스에게만 눈이 갔습니다. 전장에 나타나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지고, 왕 앞에서도 할 말을 다 하는 그 캐릭터는 전형적인 영웅의 매력이 강했으니까요. 그런데 다시 보니 이상하게도 헥토르(Hector)에게 더 눈이 가더라고요.
두 사람의 차이는 싸우는 이유에 있습니다. 아킬레우스는 클레오스(kleos), 즉 영웅적 명성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전쟁터로 향합니다. 여기서 클레오스란 고대 그리스 전사 문화에서 전사가 전장에서 이룬 무공과 명예가 노래와 이야기로 영원히 기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킬레우스가 오디세우스의 설득을 뿌리치다가도 결국 트로이로 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반면 헥토르는 처음부터 이 전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동생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려온 순간부터 일이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었고, 성 밖으로 나가 싸우는 것도 반대합니다. 공성전(Siege warfare), 즉 성벽을 방패 삼아 방어하는 전술이 훨씬 유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왕과 참모들의 결정에 끌려갑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들을 다시 돌려봤는데, 헥토르의 표정에는 매번 무거운 체념이 깔려 있더라고요.
그래서 두 사람이 트로이 성문 앞에서 맞붙는 장면은 단순한 강자 대결이 아니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처음에는 누가 이기는지만 봤는데, 다시 보니 완전히 다른 이유로 여기까지 온 두 사람이 마주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 장면도 오래 남았습니다. 헥토르를 죽인 뒤 시신을 전차에 묶어 끌고 다니던 아킬레우스가, 한밤중에 늙은 프리아모스 왕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프리아모스는 아들의 시신을 돌려달라는 부탁 하나만 가지고 홀로 찾아왔습니다. 이 장면은 《일리아스》 원전에서도 핵심 장면으로 꼽히는데, 출처: Perseus Digital Library — 《일리아스》 24권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킬레우스도 페트로클로스를 잃었고, 프리아모스도 아들을 잃었습니다. 서로 적이지만 그 슬픔만큼은 같았고, 아킬레우스는 결국 시신을 돌려주고 12일간의 휴전까지 약속합니다.
그리고 트로이 목마(Trojan Horse)로 이어지는 결말. 트로이 목마란 적군이 거대한 목마 안에 병사를 숨겨 성 안으로 잠입하는 기만 전술로, 오늘날에는 악성 코드를 정상 프로그램처럼 위장하는 트로이 목마 바이러스라는 말의 어원이 됐습니다. 그토록 강했던 트로이가 목마 하나로 허무하게 무너지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전쟁 스펙터클이 아니라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트로이는 그리스 신화를 그대로 담은 작품인가요?
A. 아닙니다. 영화 《트로이》는 《일리아스》의 전체적인 틀을 가져오되, 신들의 개입을 완전히 제거하고 주요 인물의 설정도 대폭 바꿨습니다. 그리스 신화를 공부하려는 목적이라면 원전을 따로 찾아보시는 게 맞습니다. 이 영화는 신화를 현대 전쟁영화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보는 게 정확합니다.
Q. 아킬레우스건이라는 말이 왜 생겼나요?
A. 어머니 테티스가 아들 아킬레우스를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저승 강인 스틱스(Styx)에 담갔는데, 이때 발뒤꿈치를 잡고 담갔기 때문에 그 부분만 강물이 닿지 않아 유일한 약점으로 남게 됩니다. 아킬레우스가 결국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아 죽으면서, 오늘날 발꿈치 힘줄을 아킬레우스건이라 부르게 됐습니다. 사람이나 조직의 치명적 약점을 가리킬 때도 쓰이죠.
Q. 트로이 목마 실물이 실제로 있나요?
A. 영화 촬영에 사용된 트로이 목마 소품이 현재 터키에 있습니다. 원래 터키 정부가 자국에서 촬영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영화는 멕시코 해안에서 찍었고, 제작진이 미안함을 담아 촬영에 쓴 목마를 터키에 기증했습니다. 실제 배를 부숴 만든 듯한 디테일이 인상적이라고 하는데, 저도 언제 한 번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Q. 영화에서 파리스가 영웅 보검을 물려주는 청년은 누구인가요?
A. 그 청년은 아이네이아스(Aeneas)입니다. 트로이 멸망 이후까지 살아남아 이탈리아로 건너가 로마 건국 신화의 기원이 되는 인물입니다. 《트로이》 후반부에 잠깐 등장하지만, 로마 건국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이 작은 장면이 사실 꽤 큰 복선이었던 셈이죠.
결론
《트로이》를 다시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질문은 결국 이겁니다. 영원히 기억되기를 원했던 아킬레우스와, 자기 곁의 사람들을 지키고 싶었던 헥토르, 둘 중 누가 더 위대한 영웅이었을까요? 쉽게 답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다시 보니, 왜 많은 사람들이 아킬레우스보다 헥토르에게 마음이 가는지는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관심이 생기셨다면 감독판(3시간 16분)으로 보시길 권합니다. 극장판과는 꽤 다른 호흡으로 전개되고, 인물들의 감정선이 훨씬 선명하게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본 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원전을 한 번이라도 찾아보면, 영화에서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가 더 잘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