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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영웅이 결국 혼자만 살아 돌아왔다면, 그건 위대한 귀환일까요, 아니면 실패한 지도자의 이야기일까요. 영화 《오디세이》를 보기 전까지 저는 당연히 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오디세우스는 제가 기대했던 완벽한 영웅과는 꽤 달랐습니다. 수백 명의 부하를 이끌고 출발해서 혼자 돌아온 사람. 그 사실 하나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아가멤논 가문의 저주, 그리고 트로이 전쟁이 시작된 진짜 이유

영화 초반에 아가멤논이 등장할 때, 저는 그냥 강한 왕이 나왔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펼쳐지는 가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생각이 바뀝니다. 아가멤논은 개인이 아니라 수 세대에 걸친 저주의 최종 수령자였습니다.

이 저주의 시작은 탄탈로스(Tantalos)입니다. 제우스의 아들로 신들의 총애를 받았던 그는, 신들의 전지전능함을 시험한답시고 친아들 펠롭스를 죽여 요리로 바치는 짓을 저질렀습니다. 신들은 경악했고, 탄탈로스에게 영원한 형벌을 내렸습니다. 눈앞에 물과 과일이 있지만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상태로 지하 세계에 갇힌 것입니다. 영어 단어 'tantalize'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여기서 탄탈리즈란 무언가를 눈앞에 두고 끝내 닿지 못하게 하는 것, 즉 욕망을 자극하되 충족시키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살려 난 펠롭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왕비를 얻기 위한 전차 경주에서 자신을 도운 마부 미르틸로스를 배신하고 절벽 아래로 던져버렸습니다. 죽어가며 저주를 퍼부은 미르틸로스의 말은 그대로 실현되어 펠롭스의 아들 아트레우스와 티에스테스에게 이어집니다. 아트레우스는 동생 티에스테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아들들을 죽여 음식으로 만들어 먹였습니다. 할아버지 탄탈로스가 아들을 신에게 바쳤던 죄가 세대를 뛰어넘어 반복된 것입니다.

그렇게 이어진 저주가 아가멤논에게 닿았습니다. 그는 트로이 원정을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쳤고, 10년 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날 전쟁터가 아닌 자신의 집에서 아내의 손에 죽었습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Klytaimnestra)는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복수를 잊지 않았습니다.

트로이 전쟁이 그저 헬레네라는 미녀 때문에 시작됐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설명이 늘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전쟁의 배경에는 수십 년 전 오디세우스가 설계한 '틴다레우스의 서약'이 있었습니다. 헬레네의 아버지 틴다레우스 왕은 수많은 구혼자들 중 한 명을 고르면 나머지 전부가 적이 될 것을 두려워했고, 오디세우스가 해결책을 제안했습니다. 누가 선택되든 그 결혼을 존중하고, 만약 누군가 그 부부를 해치면 전원이 힘을 합쳐 응징한다는 맹세. 오디세우스는 이 지략의 대가로 헬레네의 사촌 페넬로페와의 결혼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 뒤, 자신이 만든 그 서약이 자신을 20년의 전쟁과 표류 속으로 끌어들이게 됩니다.

  • 탄탈로스의 죄 → 펠롭스의 배신 → 아트레우스의 복수 → 아가멤논의 파멸로 이어지는 저주의 연쇄
  • 트로이 전쟁의 실질적 발동 근거는 '틴다레우스의 서약', 오디세우스 본인이 설계했다
  • 아가멤논은 딸을 제물로 바쳤고, 그 결정이 아내의 복수심을 10년 동안 키웠다
요약: 아가멤논의 비극은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수 세대에 걸친 저주의 결과였으며, 트로이 전쟁 자체도 오디세우스가 설계한 서약이 수십 년 뒤 작동한 결과였습니다.

 

 

크세니아가 없었다면 오디세우스는 살아남지 못했다

영화에서 오디세우스의 궁전에 100명이 넘는 구혼자들이 눌러앉아 재산을 축내는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왜 페넬로페는 저들을 쫓아내지 못하는 걸까. 그냥 내보내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당시 그리스 세계를 지탱하던 핵심 규범인 크세니아(Xenia)가 있었습니다.

크세니아란 '나그네를 손님으로 극진히 대접해야 한다'는 관습입니다. 쉽게 말해 낯선 사람이 문 앞에 나타나면 누구인지 묻기도 전에 먼저 씻을 물을 주고, 먹을 것을 내고, 쉴 곳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제우스가 직접 보호하는 신성한 계약이었습니다. 태옥세니아(Theoxenia)라고 해서, 신이 나그네로 변장해 인간을 시험한다는 관념이 이 관습의 토대였습니다. 여기서 태옥세니아란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 집의 환대 수준을 직접 확인한다는 개념으로, 크세니아를 어기면 언제든 신의 분노를 살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경찰도, 여관도, 국제법도 없던 시대에 크세니아는 서로가 서로에게 보험이 되어주는 사회 전체의 신뢰 시스템이었습니다. 출처: Britannica — Odyssey에 따르면 오디세이아는 이 크세니아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탐구하는 작품으로 읽힙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이 규범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 인물마다 달랐다는 점입니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Polyphemos)는 손님을 대접하기는커녕 잡아먹었습니다. 규범을 정면으로 무시한 야만의 상징이었습니다. 반면 마녀 키르케(Kirke)는 환대의 형식은 흉내 냈지만 음식에 약을 타 부하들을 돼지로 만들었습니다. 형식만 빌린 배신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노예 신분인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는 가진 것이 거의 없으면서도 거지 차림의 낯선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내놓으며 '모든 나그네와 거지는 제우스에게서 온다'라고 말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인물이 이야기의 도덕적 중심에 있을 때 작품이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구혼자들이 결국 죽음을 맞이한 것도 이 규범의 논리 위에 있습니다. 그들은 크세니아를 악용했습니다. 손님의 권리만 누리고 의무는 다하지 않았으며, 거지로 변장한 오디세우스에게 물건을 집어던지며 폭력을 가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크세니아 규칙을 어긴 손님들을 죽일 정당한 명분을 그들 스스로 만들어준 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약: 크세니아는 고대 그리스의 손님 환대 규범으로, 오디세이아 전체를 관통하는 문명과 야만의 기준선이었으며 구혼자들의 파멸도 이 규범을 어긴 결과였습니다.

 

 

노스토스를 택한 사람, 그리고 문명인과 야만인의 경계

칼립소(Kalypso)의 제안 장면이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여신이 불멸의 삶을 주겠다고 하는데, 오디세우스는 거절합니다. 이걸 처음 봤을 때는 단순히 아내를 사랑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선택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리스 영웅들의 삶의 기준 두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클레오스(Kleos),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는 것. 다른 하나는 노스토스(Nostos),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 가족 곁에서 늙어가는 것. 여기서 노스토스란 단순히 귀향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 명성보다 삶 자체를 택하는 가치관의 표현입니다. 참고로 영어의 노스탤지어(nostalgia)가 바로 이 노스토스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이미 트로이 목마로 충분한 클레오스를 쌓은 인물입니다. 그런 사람이 불멸까지 포기하고 고향을 택한다는 건, 이 작품이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는 신호로 읽혔습니다. 저는 이 선택이 나오는 순간부터 오디세우스를 조금 다르게 보게 됐습니다. 출처: Perseus Digital Library — Odysseia 원문에 따르면, 원작에서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에게 페넬로페가 외모로는 비교도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직접 말합니다. 불멸의 아름다움보다 필멸의 일상을 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제가 더 흥미롭게 본 건 오디세우스의 결함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오디세우스는 지략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원작과 영화 모두에서 그는 오만과 호기심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인물로 그려집니다.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 하고 탈출한 뒤, 굳이 자신이 이타카의 오디세우스라고 밝히며 조롱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 순간이 포세이돈의 저주를 불러들이고 10년의 표류로 이어졌습니다. 이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상대가 자신이 졌다는 걸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그게 오디세우스의 인간적인 면이자 가장 큰 약점이었습니다.

영화가 '바다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존재를 계속 언급하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자신들을 문명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마을을 약탈하고 파괴하며 이동합니다. 결국 자신들이 바로 그 두려운 바다민족이었음을 이야기가 진행되며 드러냅니다. 일반적으로 문명인과 야만인의 구분은 명확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저는 이 영화가 그 경계를 끊임없이 흔드는 방식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문명의 상징이었던 크세니아를 어기는 쪽이 결국 그리스인 자신들이었으니까요.

요약: 노스토스는 명성보다 삶을 택하는 가치관이며, 오디세우스는 뛰어난 영웅이지만 오만이라는 결함을 가진 인물로 그려졌고, 영화는 문명인과 야만인의 경계가 생각보다 희미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가멤논 가문의 저주는 어디서 시작된 건가요?

A. 저주의 시작은 아가멤논보다 두 세대 위인 탄탈로스입니다. 그는 신들을 시험하기 위해 아들 펠롭스를 죽여 요리로 바쳤고, 이에 신들이 그에게 영원한 형벌을 내렸습니다. 이후 펠롭스의 배신, 아트레우스의 잔혹한 복수를 거쳐 저주는 아가멤논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아가멤논의 비극은 트로이 전쟁의 결과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수 세대에 걸친 가문의 저주가 그 배경에 있습니다.

 

Q. 크세니아가 뭔지 쉽게 설명해주세요

A. 크세니아는 고대 그리스의 손님 환대 관습으로,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 누구인지 묻기 전에 먼저 먹을 것과 쉴 곳을 제공해야 한다는 규범입니다.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제우스가 직접 보호하는 신성한 계약으로 여겨졌으며, 이를 어기면 신의 벌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오디세이아에서 구혼자들이 죽임을 당한 것도 이 규범을 어긴 것이 결정적 명분이었습니다.

 

Q.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불멸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뭔가요?

A. 오디세우스는 이미 트로이 목마로 충분한 명성인 클레오스를 얻은 상태였습니다. 그가 원한 것은 노스토스, 즉 살아서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원작에서 그는 페넬로페가 외모로 비교가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직접 말합니다. 불멸의 삶보다 필멸의 일상을 택한 선택으로, 이 장면이 오디세이아가 단순한 모험담이 아님을 보여주는 핵심입니다.

 

Q. 영화 오디세이와 호메로스 원작의 결말이 어떻게 다른가요?

A. 영화에서 오디세우스는 구혼자들을 모두 죽인 뒤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서쪽으로 떠납니다. 반면 원작에서는 구혼자 가문들이 복수하러 쳐들어와 내전 직전까지 가다가, 아테나의 중재로 화해하고 오디세우스가 그대로 이타카의 왕으로 남습니다. 저승의 예언자 테일레시아스도 그가 백성들에게 둘러싸여 평온하게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떠나는 결말과 남는 결말, 꽤 큰 차이입니다.

 

 

결론

영화 《오디세이》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건 오디세우스가 얼마나 대단한 영웅이었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왜 그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집으로 돌아가려 했는가, 그 이유가 더 마음에 남았습니다. 신과 괴물, 전쟁과 복수로 가득한 거대한 이야기인데도 마지막에 남는 게 결국 '집'이라는 사실이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입니다.

아가멤논 가문의 저주와 틴다레우스의 서약, 크세니아의 작동 방식, 클레오스와 노스토스의 대비를 알고 나면 이 영화가 훨씬 다르게 읽힙니다. 단순히 괴물과 싸우는 장면을 보는 것과, 각 인물의 선택이 어떤 세계관 위에 서 있는지를 알고 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원작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직접 읽어보시는 것도 강하게 권하고 싶습니다. 영화와 다른 부분들이 꽤 많고, 그 차이가 재미있습니다.

참고: https://youtu.be/RflgfuoGxlo?si=qM7xY4PrGg9Ejg3H